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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종-역할 한계’ 마주한 류현진, 돌파구 필요하다
2017-05-13 06:00:01

[뉴스엔 안형준 기자]

류현진이 한계에 직면했다.

LA 다저스 류현진은 5월 12일(한국시간) 미국 콜로라도주 덴버 쿠어스필드에서 열린 '2017 메이저리그' 콜로라도 로키스와 경기에서 커리어 최악의 투구를 펼쳤다. 이날 류현진은 4이닝 동안 8피안타 7사사구 4탈삼진, 10실점(5자책) 최악 성적을 기록했다. 다저스 타선은 7점을 뽑아냈지만 7-10으로 패했다. 류현진은 시즌 5패(1승, ERA 4.99)째를 안았다.

아쉬움으로 가득한 경기였다. 류현진은 이날 경기에서 내세울 것 없는 투구 내용을 보였다. 패스트볼 구속이 시속 92마일까지 나왔지만 지리적인 영향으로 다른 구장보다 투수의 구속이 상승한다고 알려진 쿠어스필드인 만큼 의미있는 수치는 아니다.

▲첫 번째, 구종의 한계

짚고넘어가야 할 것은 볼배합이다. 이날 류현진은 야스마니 그랜달이 아닌 오스틴 반스와 호흡을 맞췄다. 지난 2경기에서 그랜달과 배터리를 이룬 류현진은 체인지업을 패스트볼보다 더 많이 던지는 파격적인 볼배합으로 호투했지만 이날은 총 101구 중에 체인지업을 23개만 던졌다.

경기에서 어떤 공을 주로 사용할지는 포수가 마음대로 정하는 것이 아니다. 체인지업 구사를 줄인 것은 포수가 반스였기 때문이 아니라 상대팀이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나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아닌 콜로라도였기 때문이다. 팬그래프닷컴이 제공하는 PITCH f/x에 따르면 콜로라도는 올시즌 빅리그 30개 구단 중 체인지업을 가장 잘 공략한 팀이다. 코칭스태프든 포수든 투수든 일부러 상대 타선의 강점에 맞춰 경기를 치를 사람은 없다. '체인지업을 너무 많이 던지면 안되는' 콜로라도를 상대한 만큼, 체인지업 구사율 감소는 반스가 아닌 그랜달이 마스크를 썼어도 마찬가지였을 것이다.

문제는 여기에서 나타났다. 류현진은 올시즌 6차례 등판에서 두 차례 호투했다. 샌프란시스코, 필라델피아전이었다. 현재 류현진이 구사하는 패스트볼,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중에 가장 좋은 공은 단연 체인지업이다. 그리고 샌프란시스코와 필라델피아는 올시즌 체인지업에 가장 약했던 팀들이다. 콜로라도가 1위를 달리는 PITCH f/x의 체인지업 공략 순위에서 샌프란시스코는 29위, 필라델피아는 28위였다. 두 팀은 체인지업을 앞세운 투수가 호투할 가능성이 높은 상대들이었다.

체인지업은 기본적으로 속구의 우산 아래에서 효과를 보는 공이다. 홀로 무기가 될 수 있는 브레이킹 볼이 아닌 속구와의 구속차로 타자를 공략하는 오프스피드 피치인 만큼 패스트볼을 제치고 전면에 나설 수 없는 공이 체인지업이다. 메이저리그 최고 수준의 체인지업을 구사하는 콜 해멀스(TEX)나 펠릭스 에르난데스(SEA)는 물론 전성기의 팀 린스컴, 요한 산타나를 비롯해 체인지업을 앞세워 600세이브 고지에 오른 전설 '지옥의 종소리' 트레버 호프만도 체인지업을 속구보다 많이 던지는 투구패턴을 보이지는 않았다. 이들은 모두 50% 이상의 공을 속구계통(포심-투심-싱커-커터)으로 던졌고 속구 외의 구종 중 체인지업을 가장 많이 던졌을 뿐이다. 올시즌 체인지업으로 돌풍을 일으키고 있는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제이슨 바르가스 역시 패스트볼 구사율이 52.7%고 체인지업 구사율은 31.2%에 불과하다. 사실 모든 '비 속구' 구종이 마찬가지다. 속구보다 높은 비율로 브레이킹 볼이나 오프스피드 피치를 구사한다는 것 자체가 넌센스다.

류현진은 이날 경기 이전 그랜달과 호흡을 맞춘 콜로라도, 시카고 컵스전에서도 체인지업을 주로 구사하지 않았다. 지난 2경기에서 보인 체인지업 위주 피칭은 체인지업에 약점을 보이는 두 팀을 상대로 한 변칙 형식의 '맞춤형 볼배합'이었을 뿐, 류현진의 체인지업이 너무 위력적이라서 패스트볼보다 우선순위를 두고 볼배합의 변화를 결정한 것이 아니라는 의미다. 올시즌 첫 3경기와 크게 다르지 않았던 이날 경기의 볼배합은 결국 '체인지업에 유독 약한 팀'이 아닌 다른 대부분의 팀들을 상대할 때 가져가야 하는 패턴인 셈이다. 그리고 가장 좋은 공인 체인지업 구사가 줄어들자 류현진의 투구 내용은 첫 3경기와 다름없이 다시 나빠졌다. 체인지업만이 유일한 믿을 곳인 현 상황에서의 한계인 셈이다.

속구의 구속을 잃은 지금 이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체인지업을 많이 던질 수 없는 상대'를 공략할 수 있는 서드 피치가 필요하다. 콜로라도와 컵스를 상대로 고전한 것은 류현진이 가진 두 가지 브레이킹 볼인 슬라이더와 커브가 제대로 말을 듣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상으로 인해 잃은 구속을 되찾을 수 없다면 반드시 해결해야 할 과제다. 현재 내셔널리그 서부지구에서 패스트볼과 체인지업 위주로 상대할 수 있는 팀은 샌프란시스코 밖에 없다. 콜로라도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 백스는 물론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마저도 체인지업을 잘 공략하고 있다. 사실상 샌프란시스코전을 제외한 모든 경기를 컵스나 콜로라도를 상대하는 것처럼 치를 수 밖에 없다. 필라델피아와는 9월이 돼야 4연전을 한 번 더 가질 뿐이다. 물론 구속의 회복도, 서드 피치의 갑작스러운 단련도 모두 쉽지는 않다. 하지만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구속을 끌어올리는 것보다는 브레이킹 볼을 단련하는 쪽이 더 현실성 있을 것이다.

마에다 겐타가 DL로 향한 만큼 류현진의 다음 등판은 오는 17일 혹은 18일, 샌프란시스코전이 될 전망이다. 샌프란시스코는 체인지업에 약한 팀. 다음 등판에서 류현진과 호흡을 맞출 포수는 그랜달이든 반스든 콜로라도전과는 다른, 체인지업의 비중이 높아진 게임플랜으로 백스톱을 지킬 것이다. 그리고 가장 자신있는 공을 던지게 될 류현진은 특별한 변화 없이도 지난 4월 25일을 떠올리게 하는 호투를 펼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렇게 된다면, 그 호투가 로테이션에 잔류할 경우 그 다음에 만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상대로도 이어진다는 보장은 없다.

▲두 번째, 역할과 위치의 한계

류현진이 극복해야 할 또 하나의 한계이자 시련은 바로 5선발이라는 현재의 위치다. 류현진은 2013년과 2014년 클레이튼 커쇼-잭 그레인키(현 ARI)의 뒤를 잇는 3선발로 활약했다. 메이저리그 최고의 3선발이라는 호평까지도 들은 류현진은 다저스 마운드에서 굉장히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었고 그만큼 팀의 지원도 풍부했다. 까다로운 상대를 맞이해서는 일정이 조정되기도 했고 류현진이 심리적으로 편안함을 느낄 수 있는 환경에서 마운드에 오를 수 있도록 최대한의 배려가 동반됐다. 하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마운드의 중책을 맡은 3선발이었을 때의 이야기다.

현재 류현진은 다저스의 5선발이다. 5선발은 팀의 미래인 유망주가 수업을 위해 맡는 경우가 아니라면 언제든지 대체가 가능하며 상위 순번의 선발투수들에게 유리한 환경을 제공하기 위해 '희생'을 강요받는 위치다. 팀이 다음날 에이스 커쇼의 선발등판 경기를 최상의 상태로 치르기 위해 최근 3경기에 모두 선발출전한 주전포수 그랜달에게 이동 후 첫 경기에 휴식을 부여하고 반스와의 배터리 호흡을 지시했다고 해도 원망할 수도 탓할 수도 없는 위치다. 데이브 로버츠 감독이 "불펜을 아끼려고 7점을 내준 후에도 마운드에 남겨놨다"고 말해도 수긍할 수 밖에 없는 위치가 5선발이다. 만약 류현진이 부상 전의 위치였다면 로버츠 감독은 핵심 선발 투수가 일찍 충격에서 벗어나 회복하도록 7실점 이후 다시 마운드에 올려보내지 않았을 것이다.

류현진이 5선발이라는 위치에 머물러있는 한, 팀에 이 이상의 지원을 바라기는 힘들다. 그것이 5선발이라는 역할이 갖는 한계다. 가장 승리할 확률이 높은 에이스의 경기에 최상의 전력을 투입하고, 언제든 대체 가능한 5선발 개인보다는 향후 일정을 고려하는 것이 팀의 입장에서는 당연한 선택이기 때문이다. 이 선택을 두고 팀을 탓할 수는 없다.

물론 5선발이 등판하는 경기라고 해서 져도 된다고 생각하는 팀은 없다. 5선발 경기의 승률마저 최대한 높이는 것이 모든 구단, 모든 코칭스태프의 목표다. 하지만 5선발 경기의 승률을 높이기 위해 상위 선발 등판 경기의 승리 확률이 낮아지게 된다면 그것은 본말 전도다. '5선발 류현진'의 호투를 위해 '에이스 커쇼'에게 피로가 쌓인 주전포수와의 배터리 호흡을 요구할 감독은 야구계 어디에도 없다.

결국 두 가지는 맞물려있다. 류현진은 체인지업이 통하지 않을 때 경기를 풀어나갈 해법을 찾아야하며 그 해법을 바탕으로 가장 열악한 지원을 받는 5선발의 위치에서 벗어나 더 앞 순번으로 스스로 나아가야 한다. 아니면 '신체의 한계'를 뛰어넘어 최고시속 95마일의 패스트볼 구속을 되찾아야 한다.

애써 좋은 점을 찾고 부진의 여러 원인 중 외부적 원인만을 부각시킨다고 해서 마주한 위기가 사라지고 부진이 활약으로 변하는 것은 아니다. 이날 기록한 10실점 중 반스의 실책에서 비롯된 비자책 5실점을 지운다고 해도 5실점을 기록한 경기가 호투로 평가되지도 않는다. 어깨나 팔꿈치 문제로 로테이션을 거르지 않았고 100개의 투구 수를 무리없이 소화한 류현진은 건강을 회복했다. 이제 마주한 한계 상황을 냉정하게 파악하고 돌파구를 마련해야 할 때다.(사진=류현진/뉴스엔DB)

뉴스엔 안형준 marka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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