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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랑 끝에서 살아난 LG의 ‘육성’, 어떤 의미 될까[슬로우볼]
2019-10-10 06:00:02
 


[뉴스엔 글 안형준 기자/사진 표명중 기자]

2014년 10월 24일, 잠실에서 열린 LG 트윈스와 NC 다이노스의 준플레이오프 3차전은 관중석을 가득 메운 홈팬들의 목소리가 얼마나 대단할 수 있는지가 잘 나타난 경기였다.

당시 경기에서 LG는 NC에 3-4로 패했다. 하지만 그 경기는 LG 역사의 한 줄로 남기에 충분했다. 8회말 1사 2,3루 찬스에서 팀을 상징하는 스타인 이병규가 대타로 나서자 잠실을 가득 메운 LG팬들은 그야말로 우레와 같은 목소리로 "LG의 이병규"를 외쳤다. 당시 타석을 두고 'LG 팬들이 이병규의 이름을 외치는 소리가 코엑스에서도 들렸다'거나 '당시 투수였던 손민한이 LG 팬들의 응원에 흔들려 폭투를 기록했다'는 이야기가 떠돌 정도였다.
3차전에서는 승리했지만 LG에 시리즈를 내준 신생 NC에게 당시의 응원전은 트라우마로 남았다. 2016년 플레이오프에서 LG를 다시 만난 NC는 당시 사령탑을 맡고 있던 김경문 감독부터 '잠실 홈팬들의 응원'을 경계 대상으로 꼽았다. NC 뿐 아니라 포스트시즌에서 LG를 만나는 팀들은 모두 마찬가지였다. 경기는 선수들이 하는 것이지만 그라운드를 둘러싼 팬들의 목소리가 선수의 마음을 흔들고 경기 분위기에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 KBO리그 최고 인기 구단 중 하나인 LG의 일방적인 홈 응원은 그만큼 상대 팀에게는 위협적이었다. '2014년 준플레이오프 3차전 8회 이병규 타석'으로 대표되는 LG의 가을 '육성(肉聲) 응원'은 포스트시즌의 명물이라고 부를 만했다.

이병규는 은퇴했고 KBO리그는 응원가 저작권 논란을 겪었다. 논란 속에서 많은 팀들이 응원가를 교체했고 LG도 예외는 아니었다. 팬들의 목소리를 이끌어내기보다는 앰프에 의존하는 빠른 템포의 응원가들이 늘어났고 이병규의 것과 함께 LG 응원가의 '명품'으로 손꼽히던 박용택의 응원가도 새로운 곡으로 교체됐다. "무적 LG 박용택, 오오 오오오오"를 외치던 LG 팬들의 모습은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포스트시즌, 백스톱 뒤에 위치한 기자석에 앉으면 양 팀의 응원 열기가 고스란히 느껴진다. 양 팀 응원석으로부터 조금이나마 거리가 있는 '중립지대'인 만큼 좌우에서 들리는 1,3루 응원 함성의 크기도 완벽하지는 않지만 어느 정도 비교가 가능하다. 물론 어디까지나 한 개인의 느낌이고 응원하는 팀과 입장에 따라 다른 인상을 받을 수도 있지만.(어쩌면 독자들로부터 가장 많이 받는 질책 중 하나인 '일기는 일기장에' 써야 할 정도의 생각일 수도 있다.)

올시즌 와일드카드 결정전과 준플레이오프 1,2차전 현장에서 가장 크게 든 느낌은 LG 육성 응원의 힘이 예전에 비해 크게 약해졌다는 것이었다. 와일드카드 결정전에서 LG의 응원은 NC를 압도하지 못했다. 박용택이 대타로 들어선 순간 잠시 뜨거웠지만 그뿐이었다. NC 응원단은 앰프 소리를 키울 필요도 없었고 벤치가 LG 팬들의 응원 흐름을 끊기 위해 움직이기도 했던 2016년 플레이오프 당시의 분위기가 아주 먼 옛날처럼 느껴졌다.

플레이오프 1,2차전에서는 키움 히어로즈 홈팬들의 목소리가 고척돔을 뜨겁게 달궜다. 홈팬들의 목소리가 큰 것은 당연한 이치지만 키움은 특수성을 가진 팀이다. LG와 두산이 양분한 서울 팬덤에 후발주자로 들어선 만큼 관중 동원력에서 같은 연고의 두 팀을 따라잡기 힘든 것이 사실이고 고척돔에서 원정팀의 응원 열기가 더 뜨거웠던 일도 그리 드물지 않았다. 하지만 1,2차전의 LG는 그런 특수성이 작용하지 않는 평범한 원정팀 같았다. 악조건 속에서도 끊임없이 노력한 키움이 팬덤의 성장이라는 큰 결실을 맺었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LG 응원의 힘이 그만큼 떨어진 탓도 컸다.

10월 9일 잠실에서 열린 준플레이오프 3차전도 1,2차전과 마찬가지의 분위기로 진행됐다. LG의 목소리는 경기 초반 키움을 전혀 압도하지 못했다. 이천웅, 이형종, 김현수, 채은성 등은 물론 팀 레전드인 박용택이 타석에 들어섰을 때 조차 LG 팬들의 '육성'은 "히어로, 서건창 안타"를 외치는 키움 원정팬들의 목소리보다 크게 들리지 않았다. 키움의 원정팬들이 앰프 없이 서건창의 이름을 외치는 장면은 LG의 육성 응원을 키움이 빼앗아간 것처럼 보이기까지 했다. 앰프가 아닌 LG 팬들의 목소리가 잠실을 울리는 타석은 유강남 정도 밖에는 없었다.

안방에서조차 응원전을 압도하지 못하는 LG는 모습은 마치 하나의 문화가 저물어가는 것처럼 느껴졌고 '박용택의 응원가가 새 것으로 바뀌지 않았다면 과연 달랐을까' 하는 생각이 맴돌았다. 하지만 분위기는 5회 변했다. 구본혁을 대신해 오지환이 타석에 들어서자 잠실을 채운 LG 팬들의 목소리가 커졌다. 부상으로 이탈한 주전 유격수는 팀이 벼랑 끝에 몰리자 완전하지 않은 몸을 이끌고 나섰고 홈팬들은 함성으로 그를 반겼다.

비록 LG는 5회 득점에 실패했지만 오지환의 등장 이후 바뀐 잠실의 분위기는 결국 LG의 역전승으로 이어졌다. 5회 볼넷을 골라낸 오지환은 7회 팀에 결승점을 안기는 역전 희생플라이를 기록해 팬들의 목소리에 화답했다. 오지환이 역전을 만들어내고 루키 정우영이 박병호를 삼진으로 잡아낸 후 잠실에 울려퍼진 '민족의 아리아'는 (원조 논란과는 별개로)그 웅장함을 되찾았다. 그리고 8회말 LG 없이는 못 산다는 홈팬들의 외침 속에 타석에 들어선 카를로스 페게로가 김상수를 상대로 쐐기포를 쏘아올리자 잠실은 가을다운 함성으로 가득찼다.

영원한 것은 없다. 선수가 은퇴하고 응원가가 바뀌듯 팬덤의 크기도, 팬들의 목소리도 언젠가는 변한다. 그 변화의 기로에 서있는 것 같았던 LG는 3차전에서 아직은 아니라는 함성을 질렀다. 과연 이날 잠실을 채운 '육성'은 대반격의 신호일까 아니면 스러지기 직전의 마지막 불꽃일까.

특유의 '육성 응원'이 힘을 되찾은 3차전에서 키움에 LG는 4-2 역전승을 거두며 벼랑 끝에서 한숨을 돌렸다. 10일 열리는 4차전에는 LG 임찬규와 키움 최원태가 선발 마운드에 오른다. 여전히 벼랑 끝에 서있는 LG와 더 이상 분위기를 내줄 수 없는 키움은 4차전에서 총력전을 펼칠 전망이다.(사진=위부터 준플레이오프 3차전의


LG 팬들, 오지환)

뉴스엔 안형준 markaj@ / 표명중 acepy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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